통섭
consilience, 統攝 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으려고 하는가?
통섭(統攝).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 ·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consilience인데, 영국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이 1840년에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the Inductive Sciences)』에서 처음 만들어 쓴 말이다. consilience는 ‘jumping together(함께 뛰기)’란 뜻인데, 지식 분야에서 그렇게 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휴얼은 ‘컨실리언스(consilience)’ 외에도 artist(예술가)를 본떠 scientist(과학자)와 physicist(물리학자)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영국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에게 anode(양극)와 cathode(음극)라는 용어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consilience라는 단어는 인기가 없었는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휴얼은 이어 같은 취지로 ‘함께 솟구침(jumping together)’이라는 개념의 용어를 만들어 소개했지만, 이 또한 빛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차용해 유행시킨 사람은 『사회생물학』(1975)을 저술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다. 그는 1998년에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을 출간했는데, ‘통섭’은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최재천이 번역해 2005년에 처음 소개한 말이다.
그런데 이 ‘통섭’ 개념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10여 명의 국내 지식인의 비판을 묶은 『통섭과 지적 사기: 통섭은 과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배신했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될 정도다. 비판자 중의 한 명인 지식융합연구소장 이인식은 “통섭은 엉터리”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물학을 중심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자는 ‘윌슨식 고유이론’이지요. 되지도 않을 소리죠. 그런데 이 ‘통섭’이 지식이나 기술 융합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어요.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도 창조경제와 관련해 ‘통섭이 어떻고’라고 했어요.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은 미국학자의 이론을 써서 왜 오해를 받나요. 윌슨 교수의 제자이고 번역자인 최재천 교수는 ‘통섭에는 원효(元曉) 사상이 담겨 있다’고 했는데, 불교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생물학이 인간과 사회문제를 푸는 데 많은 공헌을 했지만 어떻게 그걸로 학문이 통합됩니까. 이런 잘못된 용어를 국가 정책에도 쓴 셈이 됐지요. 차라리 ‘융합(convergence)’이라면 몰라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김경만은 consilience는 대단히 복잡한 인식론적 문제를 포함하며, 현실적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일반대중뿐만 아니라 대학, 심지어 한국연구재단도 통섭을 마치 쉽게 실행할 수 있는 확립된 사실,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당위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수용한다는 데 있다. 나는 이 문제는 반드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재천이 얘기하는 통섭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얘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이론과학 연구기관인 고등과학원은 2012년 ‘초학제(transdisciplinary) 연구’를 도입했다. 기존의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혹은 다학제(multidisciplinary) 연구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동떨어진 두 학문,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어서 ‘횡단’, ‘초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ns’를 붙였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실제 공동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상환은 윌슨의 ‘통섭’ 개념을 “낡은 시도”라고 비판한다. 통섭은 학문 간 통합을 꾀하지만 데카르트식의 단일한 통합 학문을 시도하는 것으로, 학문 각각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초학제와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최재천은 그 어떤 문제에도 통섭을 시도해보자는 쪽이다. “내 영역을 침범했다고 해서, 몇몇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내 믿음과 다르다고 해서, 그저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덮어버리지는 말기 바란다. 통섭은 누가 뭐래도 좋은 불씨임에 틀림없다. 키워볼 일이다. 키운다고 해서 집을 불태울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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